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역대 세 번째 ‘탄핵소추 대통령’이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미국 대통령이 재임 기간 탄핵에 직면한 사례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이 중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면서 기사회생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탄핵 표결 직전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여서 부결 전망이 우세하지만 ‘탄핵소추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발단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비롯됐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때 4억 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고리로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 도중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인 헌터를 조사하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협력하라고 거듭 요구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2016년 초 자신의 아들이 이사로 지내던 우크라이나 현지 에너지 회사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가자, 10억 달러 상당의 미국 대출보증 보류를 위협하며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에게 수사를 지휘하던 빅토르 쇼킨 전 검찰총장의 해임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지난 9월 내부고발자의 고발 내용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자 9월 24일 탄핵 조사를 공식화했고, 결국 우크라이나 외압 의혹에 대해 ‘권력 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의 탄핵 조사 착수 이후 행정부 인사들에게 조사 비협조를 지시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의회 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때 자신의 선거 캠프가 러시아 측의 선거 개입에 공모한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 선상에 오르는 등 취임 초부터 끈임없는 탄핵 시비에 시달려 왔다.
결국 이번에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탄핵소추 대통령’이라는 수난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트럼프에 앞선 역대 대통령 중 탄핵에 직면한 첫 사례는 1868년 존슨 대통령이다.
존슨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행정부에서 부통령직을 수행하던 중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전후 남부 정책을 놓고 북부 공화당 급진파와 갈등을 빚던 중 1867년 에드윈 스탠턴 전쟁장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로렌조 토머스 장군을 앉히려고 시도해 관직보유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하원은 이를 포함해 존슨 대통령이 총 11건의 중범죄와 비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고, 이듬해 3월 3일 표결을 거쳐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바통을 넘겨받은 상원은 3월 6일 정식 탄핵 재판을 소집했고, 두달여 심리를 거쳐 5월 16일 표결을 실시했다.
탄핵안은 의결정족수(3분의 2)인 36표에 1표가 모자라는 35표 찬성이라는 간발의 차로 부결됐고, 존슨 대통령은 가까스로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경우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재선 선거운동을 하던 1972년 6월 닉슨 진영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상원은 1973년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이 사건을 1년여 간 조사했으며, 이는 1974년 2월 하원의 탄핵 절차 개시로 이어졌다.
하원 조사 결과, 닉슨은 같은 해 7월 사법방해와 권한남용, 의회모욕 등 3개 혐의를 적용받았다.
닉슨은 하원 표결을 앞둔 8월 5일 백악관 집무실 녹취록을 공개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워터게이트 은폐에 직접 관여한 것이 더욱 분명해지자 8월 9일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탄핵소추 대통령’에 이름을 올린 클린턴 대통령은 폴라 존스와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 등 여러 명이 얽힌 성추문으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발의됐다.
하원의 탄핵 절차는 1998년 10월 8일 시작됐다.
클린턴에게 적용된 혐의는 폴라 존스가 제기한 성희롱 소송과 관련한 연방 대배심 위증과 사법방해 등 2가지였다.
그는 1998년 1월 증언에서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의혹을 부인하고, 2주 후 대국민 TV 연설에서도 “나는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하자 클린턴은 그해 8월 대배심 증언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했다고 시인하고, TV로 방영된 대국민 연설에서는 전직 백악관 인턴과의 관계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해 12월 19일 하원은 위증(찬성 228표, 반대 206표)과 사법방해(찬성 221표, 반대 212표) 혐의 모두 통과시켜 상원으로 넘겼다.
상원은 이듬해 1월 탄핵 재판을 시작해 2월 12일 표결을 했지만, 위증(찬성 45, 반대 55)과 사법방해(찬성 50, 반대 50) 혐의 모두 가결정족수(67표) 미달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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