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 석사과정 호주인 알렉 시글리, 가디언에 기고
“고립에서 벗어나 패스트푸드와 스마트폰, 그리고 성형수술까지. 북한은 과도기에 있는 나라다”
북한에서 공부 중인 유일한 호주인 학생으로 자처한 알렉 시글리 씨가 3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의 내용이다.
평양 김일성 대학에서 북한 현대문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시글리 씨는 기고글에서 ‘북한 전체에서 단 세 명뿐인 서방국가 출신 학생 중 한명이자, 유일한 호주 학생’으로서의 평양살이 경험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중국학자였던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문화를 익혔다.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중국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북한 학생들과 같은 층을 사용하면서였다.
북한 학생들은 지도자 얼굴이 그려져 있는 핀을 옷깃에 달고 다니고 문에 인공기 스티커를 붙여놓고 살았지만, 그는 그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세뇌교육을 당한 북한 사람들’이라는 일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을 더 알기 위해 ‘통일 투어’라는 북한 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대학 졸업 후 지난해 4월부터 평양 김일성 대학에서 석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시글리 씨는 평양에 살면서 목격한 북한의 현재 모습은 ‘과도기'(in transition)에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사회의 무거운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경제 개방 정책 등으로 인해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자 계층이 생겨났다고 그는 소개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외식 산업의 증가다.
시글리 씨는 “최신 유행 식당의 경우 주말 점심이면 손님들로 빼곡하고, 이들의 옷차림은 상하이나 서울에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심지어 성형수술을 한 것이 틀림없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불고기에서부터 비빔밥까지 매우 훌륭한 한국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많이 있고 회전초밥집, 정통 중국식당까지 찾을 수 있었다. KFC, 맥도날드와 비슷한 패스트푸드 식당도 있다.
쇼핑 상점에서는 하리보 젤리에서부터 뉴질랜드 소고기, 아디다스 의류, 도브 바디워시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로컬 제품들도 질이 개선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종이가 우중충한 색깔에 표면도 거칠었지만, 지금은 상점에 하얀 종이로 된 공책들이 가득하다고 그는 전했다.
또 평양 지하철 안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영화, 뉴스 기사에 몰두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글리 씨는 무엇보다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평양 사람들과 대화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한 택시 운전사는 호주가 유명 관광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호주가 한국전쟁 당시 ‘미 제국주의’를 지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숙사에서는 영어를 전공하는 북한 학생과 넉 달 간 생활했는데, 그 학생은 네이마르와 메시를 좋아하는 열렬한 축구 팬이었다.
특히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 학생은 언젠가 통일 한국 외교부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시글리 씨는 전했다.
시글리 씨는 “평양에서의 자신의 경험이 외국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평양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노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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