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에 접어든 ‘K 배터리 전쟁’의 승자가 LG 쪽으로 귀결됐다.
LG화학의 배터리 분야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즉각 “최종 승소했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해 10년 간 미국에서의 생산과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 결론은 LG 측이 제출한 2차 전지 관련, ‘영업비밀 침해’ 리스트를 확정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모듈, 패키지 관련 부품 및 소재가 미국 관세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결했다.
이는 지난해 2월의 ‘SK 조기패소’ 결정을 사실상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수입 금지 10년’은 당초 예상됐던 수위보다 높은 제재 조치다.
양사 간 소송은 LG 측이 2019년 4월 영업비밀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조기패소’ 결정 뒤 SK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져 최종판결까지 오게 됐다. 그간 ITC의 결정은 세 차례나 연기됐다. 지난해 10월 5일, 10월 26일, 12월 1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연기된 끝에 이날 결론이 도출됐다.
다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이 기존에 수주해 놓은 포드 전기차용 배터리는 4년, 폭스바겐 전기차용 배터리는 2년 간 수입을 유예했다. 포드와 폭스바겐이 유예 기간 동안 다른 배터리 공급처를 찾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평가다.
‘유예 기간’이 갖는 함의는 상당하다. 당초 두 회사 납품 분량을 향후 생산할 미국공장이 조지아주(州)에 있다는 점 때문에 ITC 판결이 LG에 유리하게만 전개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 과정에서 조지아주의 역할 때문에 배려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결과는 조지아주 공장과 관련된 두 회사(폭스바겐‧포드)에 대해서는 일부 배려하면서도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계속 가동을 위해선 SK가 협상에 나서야 하는 쪽으로 귀결됐다.
바이든의 거부권 행사 명분이 희석되면서 SK 측은 폭스바겐 물량 공급의 지속을 위해 2년이란 유예기간이 협상시한으로 작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ITC 판결로 ‘LG에너지솔루션의 협상력은 커진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더욱 코너에 몰리게 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두 회사는 각각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규모에 달하는 합의금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반면, SK이노베이션은 거액의 피해보상금에 따른 재정부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때문에 두 회사는 상반된 반응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30여년 수십조원을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이 보호받게 됐다”며 환영했다. LG 측은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 결과”라며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소송이 사업 및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법적 조치”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SK이노베이션 고객 보호를 위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검토할 수 있는 숙려기간(6개월)에 기대를 걸었다. SK 측은 “미국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남은 절차(Presidential Review 등)를 통하여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과 포드 등 고객사에 대해선 “주어진 유예기간(2~4년) 중에 그 후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심의기간 내에 SK의 항소가 가능하지만, ITC 설립 이후 영업비밀 침해 건에 거부권이나 항소가 받아들여진 적이 없어 남은 출구는 합의뿐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SK로선 여러모로 ‘증거인멸’ 혐의가 끝내 발목이 된 반면, LG 측은 ITC의 판례를 잘 분석해 승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