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무역협상 성과 없이 끝난 뒤에도 신중한 태도 취하던 중국 관영매체 13일 전격적으로 미국 비판론 쏟아내, 내부적으로 유화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제기돼
지난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난 뒤에도 극도로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던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13일 일제히 미국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미국 비판의 선두에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앞장섰다. 인민일보는 이날 1면에 무역협상 관련 논평을 2개나 게재하는 등 많은 지면을 미국 비판과 무역전쟁에 임하는 중국의 자세 등에 할애했다.
우선 워싱턴 협상이 불발로 끝난 것에 대해서는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로 중국을 몰아붙였다며 “전적으로 미국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양국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협력에는 원칙이 있다”며 “중국은 중대 원칙 문제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법률 개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중국은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사실상 무역전쟁 재개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3면에도 전날 중국 인민대가 개최한 중미무역관계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상세히 소개하는가 하면 칼럼을 통해 “어떤 도전도 중국의 전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며 중국인들의 단합을 호소했다. 특히 올해 1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4%로 예상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며, 첨단 기술 제조업과 첨단 서비스업의 투자가 각각 1년 전보다 11.4%와 19.3% 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중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공세에도 버틸 수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 정책은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전통 무술인 태극권의 철학처럼 중국이 원칙을 지키면서 선제공격보다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이 무역전쟁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몽상이자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롤러코스터 같은 위험한 게임을 계속하면 스스로 정신을 잃고 말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관영매체들의 논조는 워싱턴 협상을 마친 뒤 류허(劉鶴) 부총리가 중국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 내용과도 일치한다. 류 부총리는 “우리는 양국의 의견차이가 차이가 중대한 원칙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이런 원칙 문제들에 대해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양국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직후에도 침묵을 지켰던 관영매체들이 일제히 미국 비판에 나섰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무역협상에 대한 전략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에서 미국과 무역전쟁 확전을 자제하고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주장도 일부에서나마 나오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3일 보도했다.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지식인이나 개혁파를 지지하는 훙얼다이(紅二代·중국 혁명 원로의 자제)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리뤄구 전 인민은행 부행장은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우리와 서방세계 관계 전반의 초석이라고 볼 수 있다”며 “우리가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기에 앞서 미국을 정말로 이해하는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국 개혁파의 거두였던 후야오방의 아들 후더핑도 올해 초 한 세미나에서 구소련의 권력집중과 경직된 계획경제를 비판하며 “우리는 구소련에서 교훈을 얻어 절대 후퇴하지 말고 확고한 개혁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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