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한국의 불법촬영 피해실태를 집중조명하면서 경각심을 일깨웠다.
BBC는 16일 가수 정준영이 전 여자친구 A씨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고소된 사례를 서울발로 보도했다.
가명으로 등장한 A씨는 정준영에게 불법촬영을 당한 뒤 “정말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내가 죽으면 정준영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BBC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A씨가 겪은 2차 피해도 부각됐다. 2016년 8월 처음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정준영의 휴대폰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A씨는 유명 연예인을 고소하는 것이 벅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고소인 신분이라기보다 되레 피의자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다.
A씨는 소환 조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이 “당신도 좋아해서 촬영에 응한 것 아니냐”고 계속 추궁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굴욕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며 실제 자신이 죄없는 사람을 상대로 고소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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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캡처BBC는 한국의 불법촬영 피해자들이 이런 굴욕적인 상황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영의 불법촬영 사실이 법원에서 드러나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경찰은 2019년 정준영의 휴대폰에 동영상이 있다는 제보에 따라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폰을 압수했으며, 압수된 휴대폰에는 A씨 등 여성 12명의 불법촬영물이 들어 있었다.
A씨는 “온 나라가 내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날 보호해주지 않았다”며 2차 피해를 호소했다. 경찰 대변인은 A씨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BBC에 알렸다.
BBC는 수사당국에 디지털 성범죄를 신고한 A씨의 경험은 불행히도 한국에서 유일하지 않다며 만연한 실태를 꼬집었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이 영상을 빠르게 다운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해 주며 때로는 온라인에서 구매자들에게 판매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2013~2018년 한국에서 3만 건 이상의 불법촬영 사건이 경찰에 신고됐다고 BBC는 보도했다.
박종민 기자BBC와 인터뷰한 피해 ‘생존’ 여성들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상당히 지속적으로 무서운 경험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모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며 공개된 장소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나 질문을 해 당혹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고 BBC는 전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고소 취하를 위해 자신들을 괴롭히기도 했으며 거꾸로 가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운운하며 기소할 것처럼 위협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경찰은 BBC에 “2차 피해 등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보호와 지원은 물론 수사기법 등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BBC에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고통을 반영한 변경된 양형지침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