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인플레이션 우려에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는 등 자본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은 필연인 만큼 가계.기업부채 관리 등 연착륙을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앙은행 달래기에도 요동치는 시장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심리적 저항성이라는 1.5%를 돌파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0.9% 수준이었던 금리는 최근 급등하기 시작해 이날은 장중 1.6%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73만건으로 전주 대비 11만 1000건 감소하는 등 각종 경기회복 신호가 이어졌고,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함께 장기 국채 금리 인상의 한 요인이 됐다.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 역시 지난달 26일 1.96%로 22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는 등 코로나19 사태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채금리가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장기 국채 금리의 가파른 상승세는 인플레이션 공포를 기저에 깔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바닥을 찍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물가가 오르고 이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제는 속도다. 시장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채 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하는 것은 자본시장에 큰 부담이고, 이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나섰다.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현 수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가 아니며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등 유동성 회수에 나설 의향이 없다고 시장을 달래고 있지만 시장은 못미덥다는 반응이다.
그 결과 지난달 25일 다우존스30산업평균 지수(-1.75%), S&P500 지수(-2.45%), 나스닥 지수(-3.52%) 등 뉴욕 3대지수가 폭락했다. 금리인상에 민감한 기술주로 구성된 나스닥의 경우 4개월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 역시 지난달 26일 전 거래일 대비 2.80% 하락한 3012.95로 장을 마치며 다시 3천선이 위협받고 있고, 일본 니케이 지수도 3.99%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가 요동쳤다.
◇인플레 실체 놓고 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
연합뉴스현재 시장을 불안케하는 인플레이션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제각각이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댄 이바신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은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 혁신 등으로 인해 억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채권 시장이 가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시장 반응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관찰되는 건 사실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경기상황을 반영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면서도 “다만, 자산가격을 중심으로한 인플레이션과 유사한 현상은 일부 관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리고 재정까지 확대정책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금융위기 때 풀렸던 유동성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고, 코로나19 사태로 그보다 더 많은 유동성이 다시 풀리면서 유동성 공급확대의 정점에 도달했다”라며 “인플레이션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대규모 유동성을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쪽으로 시장의 의견이 모아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연착륙 위한 가계.기업부채 억제책 필요”
빈 상점. 연합뉴스이처럼 상황에 대한 인식은 제각각이지만 향후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면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은 언젠가는 닥칠 미래라는 점에서 연착률을 위해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태윤 교수는 “자산가격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전반적인 부채가 확대되는 것을 제어하고, 부채에 의존한 추가적인 투자가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금리가 계속 올라가면 가계부채.기업부채가 한꺼번에 악화되면서 부도기업이 증가하고, 부채상환을 포기하는 가계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부채관리가 가장 중요해 보이고 부채의 증가속도를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최근 몇년새 급등한 자산가격과 관련해서는 “금리가 계속 높아지면 증시와 부동산에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달 26일 열린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각종 자산가격은 물론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함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어 향후 자산가격 변동성 확대요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금리의 상승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증가한 가계 및 기업부채의 상환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는 만큼 관련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같은날 발표한 ‘2021년 1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1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연 2.83%로 전월대비 0.04%포인트 상승하는 등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연속 가계대출 금리가 올랐다.
각국 중앙은행이 제로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며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미 코로나19 극복과 경기회복에 방점을 찍고 조금씩 금리상승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