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을 뇌물로 썼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현재 진행형’인 이 부회장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도 주요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법정구속된 이 부회장으로선 또 다른 ‘사법 리스크’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뇌물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며 법정구속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경영권 승계 작업 차원에서 외부적으론 정권에 대한 뇌물이라는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을 못 박은 것이다. 승계 작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이 부회장 측의 핵심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로써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연결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서도 논리 재정비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승계작업이 존재했다는 전제 하에 삼성그룹 내부적으론 어떤 불법행위가 이뤄졌는지, 여기에 이 부회장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대를 목표로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결론내리고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성사시키려는 목적에서 주가 관리 등을 통해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고의로 낮추고, 이 부회장의 지분이 많았던 제일모직의 가치는 반대로 부풀렸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합병에 따른 회계처리 과정에서 자본 잠식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해당 의혹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각종 행위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 경영활동’이라며 사실상 승계 작업을 부인해왔는데, 이번 법원의 판결로 이런 주장에 힘이 빠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단조차도 이 부회장 측이 부인했던 게 결과적으로 악수(惡手)로 작용한 것 같다”고 봤다. 이미 2019년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음에도 이 부회장은 줄곧 이와 배치되는 주장을 펼친 게 패착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은 지난 14일에 2차 공판준비기일이 잡혀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일단 연기된 상태다.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의 수감기간이 더욱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