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KT&G와 한국 필립모리스,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 코리아(BAT)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5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홍기찬 부장판사)는 20일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진료비를 지급한 환자들의 질병이 개개인의 생활습관과 유전, 주변 환경, 직업적 특성 등 흡연 이외에 다른 요인들에 의해 발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대기오염과 가족력, 음주,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들이 폐암 발병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비흡연자들도 폐암에 걸린 사례 등을 고려하면 특정한 병인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특이성 질환’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건보공단이 제출한 자료들은 환자들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해당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있을 뿐 이 두 사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증명하지는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자들이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시기, 흡연 노출 전 건강상태와 생활습관, 가족력 등 흡연 외에 다른 발병요소가 없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이날 공판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대해 법률적인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며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항소 문제를 포함해서 담배의 피해를 밝혀나가고 인정받는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라면서 “항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단은 흡연으로 인한 건보재정 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4년 ‘흡연 피해 구제 추진단’을 꾸려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흡연과 인과성이 큰 3개의 암(폐암 중 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환자들 가운데 20년 동안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했고, 기간이 30년을 넘는 이들에 대해 2003~2013년 사이 공단이 지급한 진료비를 합산해 537억원을 담배회사들에 청구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공단은 각 대상자에 대한 요양급여 내역 자료, 의무기록 분석 자료와 흡연 관련 연구자료 등 1만5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증거를 제출했으며 담배회사들의 자료 검토 시간이 길어지면서 재판은 6년을 끌어왔다.
이전에도 흡연자들이 흡연의 유해성을 제대로 경고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4년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당시 대법은 흡연이 폐를 포함한 호흡기에 각종 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전반에 널리 인식돼 있고 흡연을 계속할지 여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또 폐암과 흡연과의 인과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흡연자들 가운데 암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이 다른 환경적 요인을 제외하고 흡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인과관계로 나갈 정도는 아니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