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치러지는 경선에 등장한 ‘뜬금없는 선관위 서약서’

제37대 시카고한인회장 선거가 10년만에 경선으로 치러진다. 선거는 오는 3월 8일 시카고 한인문화원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예비후보들은 오는 28일까지 후보 등록을 모두 마무리 하고 일주일간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갑작스레 치러지는 경선으로 예비후보들과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장기남)는 선거준비에 분주하다.

시간에 쫓겨 선거준비를 하다보니 현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든 서약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규정이 모호하고,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먼저 서약서 제2항 유권자 자격에 대한 규정부터 문제 소지가 생긴다. 해당 서약서에서 규정하는 유권자 자격은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한인과 그 배우자로 하며, 거주증명은 운전면허 혹은 여권과 함께 3개월 이내의 공공 서비스 요금 청구서 등의 증명자료가 있어야 한다’로 명시돼 있다.

물론 이 규정대로라면 일리노이 지역에서 정착해서 오랜 생활을 영위한 한인들은 모두 해당사항이다. 그러나 그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기준을 정하는 데, 조항을 보면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유권자 자격에 대한 규정은 투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조항이다. 나이나 거주요건에 대한 조항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욱 모호한 점은 투표 장소에서 유권자 자격을 증명할 때 ‘3개월 이내의 공공 서비스 요금 청구서 등’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시카고한인회 정관 제36조 제1항 선거권에 대한 규정을 보면, ‘만 18세 이상의 정회원 및 일반회원으로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과 그들의 배우자로 한다’로 명시돼 있다. 서약서에 나와 있는 유권자 자격은 이전의 선거관리위원회 운영 세칙 제14조 유권자 자격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유권자 자격은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한인과 그 배우자로 하며, 거주 증명은 운전면허 및 기타 거주 증명자료가 있어야 한다’로 제시돼 있다.

현재 선관위가 서약서 규정내용을 정할 때 선관위 세칙의 ‘기타 거주 증명자료’에서 조금 더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3개월 이내의 공공 서비스 요금 청구서 등’이라는 규정을 집어 넣었지만, 실제 투표장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한인들은 대체 무엇을 준비해야할 지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해당 서약서 조항에서는 여권과 3개월 이내의 공공 서비스 요금 청구서 등도 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러나 여권은 입국사실만 확인될 뿐 그 지역에서 거주했음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권은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한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로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굳이 서약서에 명시한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카고한인회 정관의 선거관리위원회 운영 세칙 제14조에 ‘여권’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게시한 선거 공고문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여기에 명시한 선거권자는 ‘시카고시 또는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한인으로서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또는 한국인을 증명할 수 있는자, 합법적체류자, 한인의 배우자(타인종)로서 선거 공고일 현재 만 18세 이상인 자, 한인회비 납부 여부와 상관없음’으로 나타났다.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후보들이 선거 운동을 하는데 있어 현 선관위의 서약서에는 제약사항이 상당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약서 제3항을 보면 선거 운동은 3월 7일 자정까지로 돼 있다. 그리고 제4항에 ‘등록한 후보자는 선관위 주관 하에 사진, 인사말, 이력, 공약 등이 들어간 선거포스터 등의 내용을 제작하고 선관위로 이메일로 검증을 요청한다. 선관위는 후보간 선거 포스터 등의 내용을 상호 검증하도록 한다.’로 나타나 있다. 예비후보들은 오는 28일까지 후보등록 절차가 마감되고 3월 7일까지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해야한다. 28일에서 시간을 앞당긴다고 해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한 명의 한인에게라도 더 알려야 하고 그러려면 하루라도 빨리 포스터를 제작해서 배포해야 하는데, 선관위 검증을 거쳐 후보간에 상호 검증을 거친 뒤 배포 한다면 선거 운동이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다.

제5항을 보면 공동 선거 포스터외에 어떠한 유인물 선거 홍보물도 제작 및 배포가 불가하다고 돼 있는데, 이는 요즘 한국 선거운동에서 많이 쓰이는 명함 모양의 유인물 제작도 금지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6항에 ‘텔레비전, 라디오, 일간지를 통한 선거 운동은 선관위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선거가 며칠 안 남은 상태에서 후보자들은 언론을 통한 선거 운동시 선관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예비후보들은 이미 텔레비전이나 일간지 등을 통해 자신들을 알리고 있다. 현 시점에서 실효성이 있는 조항인지 의심스럽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선거에서도 신문이나 방송에 후보 홍보는 그 횟수에 제한만 두고 있다.

현재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이 제9항과 제12항이다. 제9항에 선심성 기부금 제공을 선거공약으로 발표하지 못하도록 규정에 못 박았다. 그러나 이미 한 예비후보가 기부금을 공약으로 내걸어 놓은 상태다. 따라서 단서조항을 뒀다. 이에 따르면, ‘한인사회를 위해 선의에서 기부금을 제공할 후보는 기부금을 선관위에 보증수표로 납부한 다음 선관위의 승인하에 유권자 및 언론에 홍보할 수 있다.’고 돼 있으며, 그 다음 문단에 ‘선관위에 납부된 기부금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기부금을 제공한 후보에게 반환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즉, 적지 않은 기부금을 선관위에 미리 납부해야 하며, 선거에서 패하면 그 후보는 공약시 내걸었던 기부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공약은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되고 그 직을 수행할 때를 전제로 하는 유권자와의 약속인데,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그 공약 자체를 이행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가 제시한 규정대로라면 선거에 패배했어도 공약을 이행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전적인 문제를 제외해놓고 본다면 당선자가 자신의 공약대로 그 직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자도 공약을 이행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의미다. 어떤 이유로 이러한 조항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9항은 기부금 제공을 선거공약으로 하지 말라는 의미다. 또한 해당 항목에서 제시된 ‘선심성 기부금’의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선거에서 패한 후보자의 기부금을 선관위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시가 없다.

제12항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선거권자에게 스쿨버스 등 16인승 이상의 대형 교통수단을 일체 제공할 수 없다. 이 조항은 모호하면서도 가혹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제12항에 명시된 ‘선거권자’가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 ‘선거권자’는 선거에 대한 권리를 가진 자를 말한다. 즉, 제2항에서 명시한 유권자다. 즉, 선거권자에는 유권자이면서 투표할 의사가 있는 사람과 투표할 의사가 없는 사람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제12항은 투표하러 투표장에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대형 차량 제공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만든 조항으로 파악되는데, ‘선거권자’에게 차량 제공이 안된다면, ‘투표자(투표할 의사를 명확히 한 사람)’에게는 16인승 이상 대형 교통 수단 제공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해석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 선관위는 서약서에 16인승 이상의 대형 교통 수단을 제공할 수 없는 이유로 자동차 사고 등으로 야기될 수 있는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사고 발생의 가능성은 대형버스나 경차에서도 늘 도사리고 있다. 안전 운전의 문제이지 자동차 크기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교통 수단 제공 금지의 이유로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이 조항은 상당히 가혹하다. 한국에서 고령인구가 계속 늘어나듯 시카고 한인사회에서도 고령층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대형 교통 수단 제공은 원거리에서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투표장에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를 금지시키면 당연히 투표율은 떨어질 것이고, 그들만의 한인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분들은 시카고 한인사회를 발전시켜오신 분들이고, 역사의 산 증인이라 그 누구보다도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다.

후보자가 대형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선관위측도 어르신들이 투표장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번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장소는 시카고 한인문화원이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해당 장소에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임대료 비용이 지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카고 한인 동포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지은 한인문화원에서 시카고 한인들의 대표를 뽑는 한인회장 선거에 선관위에서 임대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현재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 일부도 시카고 한인문화원에 소속된 상태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는 10년만에 치르는 경선이다. 후보들끼리는 치열한 각축장이 되겠지만 우리 한인사회에 큰 축제다. 선거 전후 여러 뒷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 현 시카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심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