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더한 민간신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훌쩍 넘기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22일 공개한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말 기준 민간부채는 명목 GDP 대비 216.3%로 전년동기대비 15.9%포인트 상승했다.
민간부채가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2배를 웃돈 것으로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5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7%로 전년동기대비 9.1%포인트 높아졌다. 기업부채 비율은 111.6%로 6.8%포인트 상승했다.
한국은행 제공가계부채는 1분기 말 기준 1765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5% 늘어나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주택담보대출이 8.5% 늘었고 기타대출도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10.8% 증가했다.
가계부채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주택자금 수요에다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자금 수요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따라 소득대비 채무부담이 크게 늘었다. 처분가능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분기 말 현재 171.5%로 1년 전에 비해 11.4%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44.7%로 2.9%포인트 하락했다. 주가 상승 등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분기 말 기업대출은 1402조 2천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4.1% 증가하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대출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자금수요 지속 및 정부‧금융기관의 금융지원 등으로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차입 증가에도 자본 확충 노력 등에 힘입어 지난해 6월말 81.1%에서 12월말 77.2%로 하락했다.
다만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는 기업의 비중은 12.4%에서 15.3%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자도 못내는 기업 금융지원 길어지면 구조조정 지연”
돈을 벌어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증가세에 있다.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길어지면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자상환능력 ‘취약기업’은 전체 분석 대상 기업(분기별 재무제표 공시 기업 2520개) 가운데 39.7%(1001개)에 달했다.
취약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해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이 1을 밑도는 기업으로 정의됐다.
한은은 취약기업 증가 배경에 대해 “금융완화 기조에 따른 차입비용 감소에도 불구,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취약기업 비중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분석 결과 취약기업의 ‘취약상태’가 길어질수록 정상기업으로 회복되는 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반면 부도 발생비율은 높아졌다.
취약상태 1년 차에서는 37.6%의 기업이 정상을 회복하지만 8년 차에서는 12.6%만 정상기업으로 돌아왔다. 1년 차에 4.1% 정도인 부도 전환율은 7년 차에 13.6%로 뛰었다.
한은은 “취약상태가 4년 이상인 취약기업은 영업손실 규모가 확대되고 단기 유동성, 장기 지급능력이 모두 나빠지면서 자산과 자기자본이 동시에 감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일시적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은은 코로나19 이후 금융지원 조치를 경기회복 양상과 금융 불균형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아울러 코로나19 금융지원이 끝날 경우 자영업자 대출자들이 받을 타격도 우려했다.
올해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831조 8천억 원에 이르고,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18.8%)은 가계대출(9.5%)을 웃돌고 있다.
작년 이후 자영업자 대출은 대면서비스(도소매·숙박음식·여가서비스 등), 저소득층, 수도권, 여성, 비(非)은행, 고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늘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다만 정부의 금융지원 등으로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국내은행)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0.24%로, 중소법인대출(0.55%)을 크게 밑돌고 가계대출(0.21%)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다.
한은은 “주로 대면 서비스업 자영업자의 대출이 늘고 고금리대출 비중도 커지면서 자영업자 대출의 질이 전반적으로 나빠졌다”며 “금융지원 종료, 시장금리 상승 등으로 대출연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 “주택가격 실물경제에 비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조정 필요”
금융 불균형이 축적된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대내외 충격을 받으면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은은 이날 펴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현재 한국의 금융환경에서 발생 가능한 미래 주택가격 상승률의 조건부 분포를 추정했다.
이 전체 가격 분포 중 하위 5% 값을 주택가격의 하방 리스크로 정의하고, 금융 불균형이 쌓였을 때 이 하방 리스크가 얼마나 심화하는가를 계산했다.
계산에는 현재의 주택가격, 시장금리차, 신용 레버리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등 요인이 들어갔다.
분석 결과 금융 불균형 누증에 따른 주택가격 하방 리스크가 작년 1분기 이후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요인별 기여도를 보면 단기적으로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 수준이 높아진 점이, 중장기적으로는 누적된 신용 레버리지가 하방 압력으로 주로 작용했다.
한은은 “주택가격과 신용 규모가 실물경제에 비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금융 불균형을 완만히 조정해 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