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북한인권 특별대표를 임명하지 않았다.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는 극단적 대치상황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묵은’ 문제를 풀기 위해 ‘불량국가’와 밀당을 하면서 상대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은 어리석은 전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3억 3천만 미국인들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핵문제를 푸는데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로서는 북한인권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것이 미국의 안보에 장애가 된다면 우선순위에 넣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때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엄청난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볼 때 트럼프는 핵문제 해결이 결국은 북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계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퇴임한 때문일까?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 들어 미국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북한인권 특사를 임명해야 한다, 북한인권 침해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토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 회부해야한다, 한국의 대북전단규제법은 북한인권에 눈을 감은 악법이다는 등의 주장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주장은 중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돼야 맞다.
위구르 지역만해도 참혹한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가.
북한인권 특사를 임명하라고 말하려면 중국인권 특사도 임명하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에서 중국 인권을 집요하게 거론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중국인권을 이슈화하기 위한 불쏘시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인권을 이슈화하는 데는 너무 좋은 소재가 있다.
바로 탈북자들이다.
최근 미국의 북한인권 여론화의 중심에는 일부 탈북자들이 있다.
지성호 국회의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장진성 작가 등 유명 탈북자들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최근이다.
미국에서는 탈북자들의 몸값이 높다.
미답의 땅, 미지의 나라 북한 내부의 실상이라는 것들을 생생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들이나, 한국의 국회의원들조차 만나기 어려운 미국의 중진 정치인들의 사무실을 탈북자들은 제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다.
언어의 장벽, 지리적인 이격 등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의 싱크탱크들에게도 탈북자들은 늘 환영받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탈북자들은 미국의 대북정책 관여자들에게 ‘한국정부보다 가까운’ 친구들이다. .
결국 미국의 북한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탈북자들의 일방적인 ‘말’과 ‘글’이 구축시켜 놓은 것들이 많다.
그들의 탈북 스토리가 기적적일수록, 그들의 북한내 경험담이 끔찍할수록 미국인들의 대북 적개심은 증폭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김정은에 대한 악마화로 이어진다.
반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김정은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한국정부의 대북 접근은 악마와의 친교쯤으로 폄훼되고 의심된다.
문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도되고 경직된 사고체계가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미동맹을 삐걱거리게 하는 잠재적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탈북자들과 가까운 미국 인사들의 이야기만 듣고있자면 한미동맹은 이미 거덜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관한한 한국과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의기를 투합해야 좋은 대북 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바이든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를 일부 탈북자들이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남한 국민들의 안위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도 헤아려야 한다.
자신들을 품어준 남한 국민들, 특히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것을 알면서도 미국 여기저기에 주관적 이야기를 팔고 다닌다면 그 것은 다른 목적 때문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