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공식화했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1년 “2년 안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세계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지 10년 만이다. 쿠팡이 상장하게 되면, 기업가치는 최소 30조원에서 55조원 이상까지 전망되고 있다.
쿠팡은 미국 증시로 향하긴 했지만, 나스닥이 아닌 뉴욕 증권거래소를 택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세계 최대 규모 증권거래소로 꼽힌다. 그만큼 상장 요건이 나스닥보다 까다롭다.
나스닥에는 구글과 아마존 등 기술 기업들이 주로 상장했다. 당장 이익을 내지 않아도 미래 성장 가치를 보는 나스닥이, 뉴욕 증권거래소보다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다. 특히 그간 누적 적자가 심한 탓에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상장폐지 권한까지 갖고 있는 뉴욕 증권거래소를 택한 것은 쿠팡의 철저한 계산과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평가다.
◇대규모 사업 자금 조달, 물류·배송 ‘강화’…”손정의 회장의 자금회수 전략” 시각도
우선, 안정적인 투자금 확보를 위해서다.
세계 최대 규모인 뉴욕 증시 상장이 성공하면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할 전망이다. 최대 투자자(추정 지분율 38%)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투자금의 7배에 해당하는 190억 달러(약 21조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통해 더욱 공격적인 사업과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물류와 배송 서비스 같은 쿠팡의 강점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쿠팡은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와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중국 베이징, 상하이에 지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30개 이상 도시에 10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회장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이 맞물린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쿠팡은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총 34억달러(약 3조 75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손 회장의 비전펀드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쿠팡에도 비상이 걸렸다. 2018년 추가로 이후 추가 투자가 끊겼고, 작년 3분기에는 손정의 회장이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발표한 상황이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우버, 슬랙, 위워크가 모두 고전하고 있다. 스타트업 ‘브랜드리스’는 폐업했다. 잇따른 투자 실패로 쿠팡에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엑시트 전략 중 하나인 IPO를 통해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고객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고객 이탈 적고 갈수록 돈 더 써” 누적 적자 폭도 해소
쿠팡의 고객 경험 위력은 데이터로 입증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 증권신고서(S-1)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1480만명에 달하는 활성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활성 고객은 해당 분기(3개월) 동안 한 번이라도 쿠팡에서 상품을 주문한 고객을 뜻한다. 대한민국 인구(5200만) 30%, 만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2738만명) 54%에 해당하는 놀라운 숫자다.
쿠팡 활성 고객 수는 2018년 4분기 916만명에서 2019년 4분기 1179만명으로 28.7% 증가했다. 2020년에 다시 25.5%로 꾸준히 늘고 있다. 활성 고객당 순매출은 2019년 4분기 161달러에서 2020년 4분기 256달러로 더 큰 폭(59%)으로 증가했다. “한번 고객이 되면 좀처럼 이탈하지 않고, 쿠팡에서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의미다.
쿠팡에 따르면 2016년 연간 지출 비중 87%를 차지했던 기존 고객 비중이 2020년 90%로 증가했고, 신규 고객 매출 비중은 2016년 13%에서 2020년 10%로 줄었다. 신규 고객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기존 고객들이 쿠팡에서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점을 그래프로 보여준 것이다.
기존 고객의 구매액 증가는 동일 고객 집단(Cohort)별 지출 패턴 데이터에서도 발견된다. 2016년에 첫 주문을 한 고객 집단의 구매액은 2020년 3.59배로 증가했고, 2017년 고객 집단의 구매액 역시 2020년에 3.46배로 늘었다. 2016년 고객 집단의 연간 지출액이 100만원이었다면 2020년에 359만원으로 증가했다는 의미다.
쿠팡이 지난해 코로나19 수혜로 적자폭을 크게 줄이며 기업가치가 오른 점도 한 수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는 5억 2773만달러(한화 약 5842억원)로, 2019년 6억 4383만달러(약 7127억원) 대비 적자 폭이 1억 1610만달러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19억 6700만달러(약 13조 2600억원)로, 전년(약 7조 1530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 연합뉴스◇김범석 체제 ‘강화’…”알리바바 이후 최대 非미국 기업 뉴욕 증시 상장” 상징성
김범석 쿠팡 의장의 리더십도 더 공고해진다. 뉴욕 증시 상장 이후에 김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보유하는 동시에 슈퍼 주식도 갖게 된다.
차등의결권이란, 창업주에게 다른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인수합병 세력을 견제하고 의사결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장치다.
쿠팡 주식은 클래스A 보통주와 클래스B 보통주로 구성된다. 클래스B는 클래스A 대비 주당 29배의 의결권이 있다. 즉 쿠팡 지분율 1%만 보유하더라고 29%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모두 김 의장이 소유한다.
현재 지분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상장 후 지분 2%만 가져도 주주총회에서 지분 58%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 할 수 있어 사실상 김 의장이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다.
업계에선 김 의장이 차등의결권을 확보함에 따라 상장 뒤에도 쿠팡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장으로 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얼마든지 경영권 방어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김 의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면서 쿠팡의 공격적 투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뉴욕 증권 거래소를 택한 가장 큰 이유’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뉴욕 증시 상장을 완료하고 나스닥 IPO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상징적인 의미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게 되면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의 비(非) 미국 기업 뉴욕 증시 상장으로 기록된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쿠팡이 기업가치 500억달러(약 55조원) 규모로 상장할 경우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를 기록하게 된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롯데쇼핑 시가총액(3조 4100억원) 16배에 달하는 메가 IPO다.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은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게임 회사 그라비티 이후 맥이 끊어졌던 국내 기업 미국 상장 재개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벽 배송으로 잘 알려진 마켓컬리가 쿠팡에 이어 미국 증시를 두드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