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주거와 도시에 대한 변화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택 활동과 외부 활동을 감안한 주택 안에서의 독립성과 공유성을 고민하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나아가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도 감지되고 있다.
◇재택근무와 통근, 원격수업과 통학이 공존하는 포스트코로나시대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재택 활동과 통근‧통학이 병행되는, 다면적 주거 트렌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직주일치’, ‘학(學)주일치’로 주택의 입지 중요성이 다소 떨어지면서 일과 학습, 여가 활동을 흡수하는 실내 공간의 복합적 현상이 나타날 거란 관측이다.
동국대 건축학부 이명식 교수는 “흑사병, 스페인독감과 같은 과거 큰 전염병 사태에는 도시의 상‧하수도를 비롯한 위생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등 변화가 뒤따랐다”며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 도시의 구조와 기능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것이 100% 재택 생활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가령 직장인은 완전한 재택화로 직주일치를 이룬 경우와 재택근무를 다시 통근생활로 돌아간 경우가 각각 존재하면서 주택 수요를 다변화한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 이지은 박사는 “‘트위터’와 같이 재택근무를 영구적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일부 재택근무를 병행하거나 아예 대면근무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전보다 재택근무가 전반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주택은 업무, 여가, 육아, 학습장으로서 복합적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5G, 증강현실, AI 등 각종 기술 발전이 뒷받침되는 상황에 이러한 변화는 ‘포스트흑사병‧ 스페인독감시대’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독립성 중요하다고 무조건 큰 집?…실속 있는 가변적 구조가 더 중요”
연합뉴스이러한 ‘다기능 주택’ 선호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에서는 넓은 집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전용면적 84㎡를 초과하는 중대형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99.64대 1로 지난 2019년의 5배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넓은 게 다는 아니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은 ‘실속’이다.
발코니 활용은 상징적이다. 단감건축사사무소 감은희 소장은 “주거에 대한 인식이 한 번 변하면 그리 쉽게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단독주택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중정이나 정원 설계를, 아파트는 발코니를 이용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파트가 발코니를 정원처럼, 카페처럼 꾸미려는 수요가 늘면서 확장을 통해 발코니를 내실로 쓰던 추세가 약화하고, 이미 확장 공사로 트인 발코니를 역으로 다시 분리하려는 문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집에 사무 공간을 두면서 층고를 높이기 위해 천장 마감을 제거하고, 배관과 에어컨 등을 그대로 노출하는 인테리어를 적용하려는 의뢰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집이 주거 겸 사무공간으로 재편되면서 거실이 사무실로, 거실이 주방으로 옮겨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감염 대응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 교수는 “발코니는 환기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며 “소독을 위한 공간이 갖춰진 현관, 통풍을 위한 바람길이 잘 갖춰진 단지 등이 부동산 가치의 중요한 척도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방역 고려한 ‘공동체성’도 계속
그렇다고 이미 조성된 공동주택의 커뮤니티시설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1인, 2인이나 가족 단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편될 수 있다. 감 소장은 “기존 공용공간을 ‘1~2인용’ 수영장과 사우나 등으로 재편하는 사례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동체성은 독립성이 강조되는 포스트코로나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이 박사는 “적절한 장치를 갖춰 아이들이 원격수업을 받을 공간, 독립적 자습 공간, 스포츠시설 등은 공동체적 수요를 고려해 단지 바깥보단 안에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단지 내에 소규모로 만들어지므로 비용 측면에서나 감염 대응 측면에서나 효율적이고, 특히 아파트는 이에 최적화한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공간이 생활을 만든다…그 자체가 감염에 뛰어난 장소로 탈바꿈해야”
호앙 나트 안(Hoang Nhat Anh)의 ‘디 인비저블 페이스마스크(The invisible Facemask)’는 지난해 서울시 ‘포스트 코로나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도시 시설과 환경 재구성을 통해 사회적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공공 공원을 제안한 작품이다. 서울시 제공더 넓게는, 도시 계획 차원의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감염에 취약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위험하니 가지 말라’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간 그 자체를 전염병에 강한 곳으로 만들고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원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한 원형적 구조보다 산책로를 중심으로 한 선형적 구조가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평면적 기준에서 입체적 기준으로 건축 관련 제도와 정책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포스트코로나시대에도 영향력을 발휘해 다중이용시설의 수용 인원 기준 자체가 줄어든다면, 이에 대한 공간 구상도 단순한 평면적 면적 개념이 아닌 입체적 체적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도로에 사람과 차뿐만 아니라, ‘물류’를 위한 길이 생겨나야 한다는 점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이 교수는 “언택트 시대 물류 수요가 크게 늘면서 물류 이동을 지하로, 컨베이어시스템처럼 구성하는 것이 새로운 도시 교통체계”라며 “사람과 차, 물류 등이 3차원적 동선을 구성하는 변화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저밀도’가 좋은 건 아냐”…코로나 이후 ‘주거지’ 서울의 미래는
‘고밀도 도시’ 서울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이 교수는 “고밀도 공간일수록 첨단기술이 빨리 적용되고 효과도 큰데. ‘K-방역’ 역시 여기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방역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도시에 잘 적용해 스마트한 도시가 됐을 때 주거지로서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점에서, 단순히 밀도 자체가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감 소장은 “서울은 주거 자체보다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환경이 주는 매력이 큰 도시”라며 “포스트코로나시대에도 이러한 자연환경과 이미 사람들이 편리할 수 있도록 개발된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점은 분명한 서울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 역시 “서울의 아름다움은 다채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도시의 각종 문화‧예술적 인프라와 안전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엔 여전히 노후 단독‧다세대 밀집 지역, 차량 접근조차 불가능한 열악한 주거지역이 다수 존재하므로 이를 정비하면서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새로운 주거 수요에 대응하는 계획을 마련하면 지역의 활력과 주민들의 거주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