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로 통칭하는 2030이 자산시장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이 세대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물론 가상화폐와 명품 시장까지 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절박하다.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렵고, 노후가 막막하다고 절규한다. 그래서 투자 행태는 영끌 빚투에 위험한 줄타기다. 인생 한 방, 일확천금을 노린다.
기성세대는 이들의 막가파식 투자행태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충고하지만, 이들은 ‘코인의 위험보다 내 인생이 더 위험하다’고 맞받는다.
◇ 시장 질서 흔드는 ‘앵그리’ 2030
2∼3년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증시 등 국내 자산시장에서 2030은 늘 조역이었다. 주역은 언제나 연봉 수준이 높고 자산이 축적된 40대 이상의 기성세대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기류가 확 바뀌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풀린 전대미문의 유동성 홍수 속에 영끌 빚투를 앞세운 2030이 부동산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작년 7월 이후 2030 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젊은층이 주축인 동학개미들이 한국증시의 넘사벽이었던 꿈의 3,000선 위로 코스피 지수를 밀어 올렸다.
투자액 기준으로 증시의 주축은 40대 이상이지만, 작년 주식 보유금액 증가율은 20대가 121%, 30대가 92.6%였다. 작년에 주식 투자를 시작한 300만명 중 53.5%인 160만명은 30대 이하였다.
이들이 올해엔 세계 금융시장의 ‘어른들’이 가장 위험한 투기시장이어서 들어가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올해 1분기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4대 거래소의 신규 가입자 250만명 가운데 2030 비중은 63.5%에 달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는 화폐도 아니고 내재가치도 없다면서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훈계했다가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코너에 몰렸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이 청원에는 3일까지 15만여명이 동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명품시장도 2030이 장악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 작년 명품 매출 비중은 2030이 50% 안팎을 차지했다. 젊은층에겐 명품이 과시의 도구이면서 ‘리셀’이라는 형태의 투자 자산이기도 하다.
◇ 집·일자리 불안에 절박감
2030은 스마트폰에 최적화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은 손바닥 안의 SNS 공간에서 투자 정보를 학습하고, 공유하고, 자산 투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부동산이건, 주식이건, 코인이건 투자 결정이 빠르고, 쉽게 옮겨 다닌다.
2030으로 통칭하지만 투자 대상이나 성향은 여러 층위를 갖고 있다. 부모 찬스와 번듯한 직장이 있어 수억원의 현금 동원이 가능한 젊은층은 아파트 시장으로 몰렸다.
하지만 현재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원, 수도권 아파트의 중위 매매가격은 7억원이다. 쌓아놓은 재산이 없다면 영끌을 한다고 해서 주택에 도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2년 이상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집 투자 대열에 뛰어들기 어려운 젊은층은 위험도는 높지만 잘하면 한몫 잡을 수도 있는 증시와 코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시장 접근이 어려운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큰돈 없이도 자산 증식을 노려볼 수 있는 주식이나 가상화폐 쪽에 예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30은 절박하다. 집과 돈, 일자리는 4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쥐고 있다. 젊은층은 노력한다고 해서 집과 돈,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토로한다. 직장 내에서는 안공서열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은성수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청원한 ’30대 평범한 직장인’은 “4050 기득권층은 부동산 상승 흐름 속에서 쉽게 자산을 축적해놓고 ‘존버(끝까지 버티기)’로 2030의 기회를 가로막아 청년 실업대란을 만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심리적으로 쫓기다 보니 젊은층의 투자 행태는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인생 한 방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기완선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 세대보다 취업이 어렵고 자산 증식이 쉽지 않아 경제적 결핍감이 심하다”면서 “이를 해소하려는 조급증에서 투자 행태가 도박으로 흐르기도 한다”고 했다.
◇ “결국은 미래 불안감 해소가 관건”
2030 세대의 공격적인 위험 자산 투자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양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구조 변화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 주택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이 젊은층의 좌절이나 위험자산 선호 현상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질 좋은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제공해 젊은층이 자산을 모으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산업정책 전반을 돌아보고 우리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젊은층의 투자행태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정용택 IBK투자은행 리서치센터장은 “젊은이들이 투자에 높은 관심을 두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소득 발생 기간이 길기 때문에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는 게 맞고 나이가 들수록 안전자산 비중 높이는 게 자산 배분의 정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위험 자산 투자도 어디까지나 펀더멘털에 토대를 두고 해야한다”면서 “실체가 없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성태윤 교수는 “특히 위험한 것은 부채를 이용하는 행태의 투자 확대”라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제어방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젊은층의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기완선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우울증을 호소하거나 충동적이고 분노 조절이 안되는 성향도 보여 걱정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