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미국동부시간) 밤 열린 미국대선 첫 TV 토론이 ‘토론’ 없는 말싸움과 부박한 가십 거리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토론의 패자는 시청자라며 토론 무용론까지 꺼내들고 있다.
이날 토론은 6개의 주제를, 주제당 15분씩 할애해 90분간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제인 대법관 지명 문제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후보간에 말싸움이 시작됐다.
자신은 4년 임기 대통령이기 때문에 임기 안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수 있다는 트럼프와 선거의 민심을 반영해 후보를 지명해야한다는 바이든 후보간에 공방이 오갔다.
하지만 대법원이 여성인권을 저하시키고 국민들의 의료권을 방해할 것이라는 바이든 후보의 말을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에 반박하면서 토론 사회자인 폭스뉴스 크리스 월리스 앵커가 뜯어 말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어 대법원의 보수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해야 한다는 바이든의 말을 트럼프가 끊으며 “그렇다면 당신의 대법관 후보들은 누구인가”를 집요하게 물었다.
바이든이 폭발했다.
“그 입 좀 닥쳐 주겠어요?” (Will you shut up, man?)
바이든은 사회자에게도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따졌다.
바로 이 장면처럼 사회자의 질문을 받아 2분씩 발언토록 돼 있는 토론 규칙이 무너지는 일은 토론이 끝날 때 까지 반복됐다.
사회자는 규칙을 저버린 두 사람를 때로는 “젠틀맨”이라 부르며 저지하느라 내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가하면 바이든은 트럼프의 발언에 실소와 코웃음으로 반응하는가 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광대’나 ‘푸틴의 강아지’라고 칭하는 등 발언 수위를 넘기기도 했다.
또는 “계속 지껄이세요”(Keep yappin’, man) 같은 저속어로 대통령을 타박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바이든의 거친 모습이 생경했던지 토론을 지상중계하던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바이든이 이렇게 공격적인 것은 처음봤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날 가장 주목을 끌 것으로 예상됐던 트럼프의 탈세 의혹에 대해서는 예상 외로 싱겁게 끝났다.
사전에 확정된 6개의 토론 주제 가운데 사회자가 ‘경제’ 부분에 이 문제를 교묘하게 섞어서 관련 질문을 던졌다.
‘2016년과 2017년에 세금을 정확히 얼마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수백만 달러를 냈다”고 답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트럼프가 곧바로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중국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화제를 전환한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탈세 문제를 활용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바이든이 아들의 문제에 관한한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두 사람은 이날 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케 하는 언사들을 주고받기도 했다.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자화 자찬에 대해 바이든은 “이 친구는 자기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비꼬는 장면, 트럼프가 바이든을 향해 “자기가 나온 대학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타박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한 말들이다.
이날 토론회에 대해 미국 주요 언론은 낙제점을 주기에 바빴다.
CNN 앵커 제이크 테퍼는 토론 직후 “그동안 봐 온 토론회 가운데 최악이었다. 이 것은 토론(debate)이라고 보다는 수치(disgrace)다”고 논평했다.
악시오스는 “모두가 말만하고 듣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배울 게 없는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엉망이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무질서한(Chaotic) 토론’이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무익한 토론이 앞으로 두 차례 더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