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1960년대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5일(현지시간) 다뤘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 때문에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났다가 8살 때 다시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넘어간 뒤 남한으로 탈북한 이태경씨의 사연이다.이씨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동포 및 일본인 9만 3천 명 가운데 한명이다.
일본인의 경우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 1800명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수천 명의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재일동포의 경우는 일제 패망이후 일본에 남았다가 고초를 겪은 뒤 북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다.
특히 그들 가운데는 훗날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의 생모가 된 고영희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주의 ‘천국’이라는 말만 믿고 북한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실은 ‘지옥’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북한으로 이민가게 된 사연은 일본 정부와 북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 패전후 일본 열도에 남게 된 조선인들을 제거하려고 해왔었고, 북한은 전후 복구를 위해 새로운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북한은 북한으로 이민 오면 직업과 무상교육, 무상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이들을 꼬드겼다고 한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들이 북한으로 한번 이주한 이상 일본으로 다시 역이민 오지 못하도록 금지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남한 출신이었음에도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북한행 배에 올라탄 때는 1960년. 이 한해에만 4만 9천 명이 북한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는 남북한 간에 체제 경쟁이 벌어졌었고, 남한은 정치적인 격변기라 북한을 더 선호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 실상이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이후 이민자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북한에서 46년을 보내고 2006년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2009년 남한에 입국했다.
현재 그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부인과 딸은 나중에 입국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다고 한다. 부인은 2013년 사망했다.
그는 자신처럼 일본을 떠나 북한을 경유해 다시 남한으로 입국한 사람들 50명으로 구성된 모임도 결성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북한 이주 9만 3천 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라며 “우리가 죽으면 우리 이야기도 묻히게 될까봐 슬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