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저항 시위대의 최전선에 여성이 섰다.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다 총을 맞고 3일 숨진 치알 신은 태권도와 매운 음식,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좋아하던 평범한 여성이었다. 거리로 나서기 전 아버지와 포옹을 나눈 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차알 신의 희생으로 군 통치 반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의 한 친구는 “차알 신은 미얀마의 영웅이 됐다”며 “우리와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 저항에 참여하면서 남성만큼이나 용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군부가 여성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몰아내고 지난 반세기 동안 미얀마 사회를 억눌렀던 가부장적 질서를 부활시키자 여성들이 이에 저항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제로 매일 수만 명의 여성이 거리로 나와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고 있다.
이틀 전에는 시위대 맨 앞에 섰던 젊은 여성 두 명이 각각 머리와 심장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차라리 나를 쏘세요” 무릎꿇은 수녀 앞에서 무장경찰도 멈췄다. 연합뉴스또 맨손의 수녀가 중무장한 경찰 병력을 앞에 두고 도로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앉아 폭력을 쓰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최소 18명의 시위자가 숨진 지난달 28일 미얀마 북부 도시 미치나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원 소속 안 누 따웅 수녀가 자신의 지역에서도 폭력 진압이 자행되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지난달 9일 시위 탄압 중 머리에 총을 맞아 발생한 첫 사망자도 20세의 여성이었다.
시위가 시작되자 여성들은 자원해 거리를 다니며 부상자를 치료했다.
여성이 기운을 혼탁하게 할 수 있다며 남녀 하의를 함께 세탁하지 못 하게 할 정도로 남녀 차별이 심한 나라가 미얀마라고 NYT가 전했다.
심지어 시위 지역의 경계 위에 빨랫줄을 걸고 여성 옷을 널어 시위대를 보호하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는 여성 옷 밑으로 지나가는 것을 꺼리는 남성의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서 그 정도로 남녀 차별의 뿌리가 깊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시위대에 나선 여성들이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을 깨고 있는 셈이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기자회견에서 미얀마인들이 쿠데타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의사인 인 인 눙(28)은 “여성은 모성 본능이 있어 시위대를 이끌고 있다”라며 “우리 자신보다는 미래 세대를 염려하고, 다음 세대가 파괴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5년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간 정부를 밀어내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군부는 여성의 옷차림이 단정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을 낼 정도로 매우 보수적이다.
군부 지도층에는 여성이 없을뿐더러 소수 민족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도 자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쿠데타의 핵심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이번 주 초 정치 선전 방송에서 여성이 바지를 입는 데 대해 “시위대가 단정치 못한 옷을 입는 것은 미얀마 정신에 위배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얀마에서도 여성 차별이 점차 깨지고 있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서 제조업과 공무원 등의 부분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계 진출도 늘어나 지난해 11월 선거에서는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의 후보 중 여성이 20%를 차지했다.
당시 선거 결과 군부와 연계된 남성 중심의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대패하자 군부는 이 선거가 조작이라며 부인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치범으로 수용된 경험이 있는 마 에이 틴자 마웅은 “우리의 대의명분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반(反) 군부 시위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도 “미얀마 군부는 시민 살인과 투옥을 멈춰야 한다”라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시민에 실탄을 발사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