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가 ‘백신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양국의 주요 바이오업체가 위탁생산과 백신 개발에 협력하기로 함에 따라 정부가 선언한 ‘글로벌 백신 허브로의 도약’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미 성과가 ‘글로벌 백신 허브’나 ‘백신 주권국’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기간 동안 양국이 백신과 관련해 맺은 계약이나 양해각서(MOU)는 모두 4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mRNA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모더나’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고, 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도 모더나와 한국의 mRNA 백신 생산시설 투자 관련 MOU를 체결했다. 모더나는 또 국립보건연구원과 mRNA 백신 연구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합성항원'(재조합)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 업체 ‘노바백스’를 상대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등에 대응하는 차세대 백신 개발을 위한 MOU를 맺었다.
23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삼성바이오로직스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모더나는 전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백신 파트너십’ 행사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4건의 계약이나 양해각서는 대부분 백신의 ‘기술’이 아닌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모더나의 위탁생산 계약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로부터 백신의 원액을 들여와 병에 조금씩 나눠 담고 상표를 부착해 포장하는 단순 생산 공정을 맡게 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최신 백신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는 mRNA 백신 기술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다. 장요한 안동대 생명백신공학과 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포장만 하는 단계라면 (백신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전이나 노하우가 전수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모더나는 한국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자신들이 생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및 보건복지부와 모더나가 맺은 MOU와 관련해 산업부는 23일 브리핑에서 “모더나가 한국에 백신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잠재적인 한국 내 투자·생산 시설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며 “산업부는 (모더나의) 신속한 공장 설립을 위해 적정 부지를 추천하는 등 지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한국은 모더나의 백신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 간의 기술이전 계약도 일단은 연장되지 못했다. 양사는 지난 2월 올해 말까지를 기한으로 노바백스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정상회담 기간 동안 이 계약을 내년까지 연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하고 차세대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한 MOU만 체결됐다. 강도태 복지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바백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의 MOU는 라이선싱 계약 부분이 아니고 개발과 연구 등에 대한 포괄적인 MOU”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라이선스인(기술도입) 계약 연장 건에 대해서는 변이 바이러스 개발 동향 등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도 ‘기술은 미국, 생산은 한국’이라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정상회담 기간 여러 차례 “미국의 선진 백신 기술과 한국의 바이오 생산 능력이 결합하면 국제적인 백신 부족 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금 비록 낮은 수준의 합의이기는 하지만 미국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백신 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 좀 더 높은 수준의 자체 백신 기술 개발도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 본다.
이런 관점에서 국립보건연구원과 모더나 간의 mRNA 백신 개발 연구협력 MOU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더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손잡고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 NIH는 mRNA를 최적화하는 백신 핵심 기술을 갖고 있다. 이번 MOU를 통해 NIH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한국의 국립보건연구원이 이 핵심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독자적으로 무엇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 상황에서 앞서 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mRNA 백신 기술은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기술이자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최적의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만큼 양자간의 MOU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백신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백신 기술을 갖춰야 한다”며 “자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기술개발 로드맵과 중장기적인 지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