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이 쿠팡 노동자 2명이 잇따라 숨졌다. 쿠팡 심야 업무를 담당하던 택배 노동자와 쿠팡맨을 관리하던 40대 캠프리더(CL)다.
쿠팡은 오는 11일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국내 대표 이커머스 기업이자, 특히 지난해 팬데믹 속에서 비대면 수혜를 입고 급격한 매출을 일궈냈다.
쿠팡의 성장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적지만, ‘일터’으로서의 쿠팡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지금의 쿠팡을 만들어낸 ‘로켓배송’ 이면엔 물류 분야의 근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쿠팡의 잇따른 과로사 소식은 외신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쿠팡의 배달 기사들이 잇따라 과로로 사망했다”며 “이 회사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 같은 날 숨진 두 명의 쿠팡 직원…동료들 “명백한 과로사” 주장
9일 업계 등에 따르면 쿠팡 구로 배송캠프에서 쿠팡맨을 관리하는 캠프리더 A씨가 지난 6일 숨졌다. 배송캠프는 배송 물품이 물류센터에서 귀가하기 전 머무는 장소다. A씨는 이날 정오부터 밤 11시까지의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벽에 쓰러진 채 가족에게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주변 동료들은 과로사를 의심하고 있다.
같은 날 40대 쿠팡맨도 세상을 떠났다. 송파 1캠프에서 심야·새벽 배송을 담당하던 B씨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6일 B씨는 새벽 배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낮 12시 23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녀와 배우자를 지방에 두고 홀로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쿠팡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일하던 중 정규직으로 전환돼 근무하던 그는, 가족에게 수시로 심야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의 임금은 한 달에 280만 원으로 심야노동을 전담한 것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을 갓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B씨의 부검 결과 뇌출혈이 발생했고 심장 쪽에 문제가 있었다는 1차 소견을 받았다. 대책위는 “고인은 평소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매일 10시간씩 주5일을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고인이 평소 지병이 없었던 만큼 명백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쿠팡 배송 직원의 뒷모습. 자료사진◇1년 새 6명 숨져…”실제 근로 환경 좋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어”
지난해 3월 처음으로 쿠팡 소속 택배 노동자가 숨진 뒤 1년 동안 쿠팡에서 숨진 물류센터·택배 근로자만 모두 6명이다. 지난해 10월 숨진 장덕준(27)씨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쿠팡은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면서도 일관되게 “과로 환경이 아니었다”고 해명해 왔다.
캠프리더 A씨의 명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쿠팡 측은 “해당 직원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로사 등 내용은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며 “확인되는 대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쿠팡에 따르면 B씨는 휴가 중에 숨졌다. 쿠팡 관계자는 “고인은 지난 2월 24일 마지막 출근 이후 7일 동안 휴가 및 휴무로 근무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지난 4일 복귀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B씨의 지난 12주간 근무 일수는 주당 평균 약 4일로 근무 시간은 약 40시간이었다”면서 “대책위가 권고한 주당 60시간 근무에 비해서 낮은 수준”이라는 게 쿠팡의 공식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과로사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근로시간이 아니라 ‘고강도 장시간 심야노동’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근로자가 6명이나 된다는 것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 ‘산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에선) 동료가 다음 날 나타나지 않아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워크로드가 너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만두었다고 가정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심야 새벽 업무가 워낙 강도 높다보니 택배기사들이 오래 일할 환경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시간대에는 근무를 감당할 인력이 충분치 않고, 개개인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쿠팡 물류 센터가 UPH(시간당 생산량) 단말기로 작업량을 감시하고, 화장실 사용 횟수, 시간 등을 통제해 보고해야 하거나, 과도한 작업량으로 산업재해 발생 비율이 높다는 지적도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기업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에 올라온 후기를 보면, 쿠팡풀필먼트에서 일해본 전현직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 근무 환경 개선”을 호소했다. 이들은 “근무시간 동안 일초 이상 쉴 수 없다. 의자가 없어서 앉을 곳도 없다. 휴식 시간을 달라”, “인당 목표량 제시 수준이 현실적이지 못함”, “배송 보조로 일을 하다 산업재해로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돼 퇴사했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이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 조합원들이 2019년 3월 7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70% 비정규직 쿠팡맨의 정규직화와 성실교섭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외신, IPO 앞둔 쿠팡 노동자 사망 보도…”지속가능성에 의문”
쿠팡의 잇따른 과로사 소식은 외신도 재빨리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쿠팡은 노동자들의 일련의 부상과 사망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경찰의 질의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지난 1년 동안 과로로 인해 6명의 쿠팡 직원이 사망했고, 이중 지난 주말 동안 사망한 직원 2명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어 FT는 쿠팡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근무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으나 상사가 문제 제기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시간당 목표보다 뒤처지면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해야 하고, 목표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야간 근무 시간에 밥을 먹을 시간도 없다”라며 쿠팡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소개했다. 이어 “쿠팡은 각종 의혹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고, 지난 2년 동안 FT는 반복해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주 IPO에 대한 투자 열기를 저해할 가능성은 작지만 이 회사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쿠팡의 창업자인 김범석 대표는 지난해 2만 5천 개의 신규 일자리를 추가하며 민간 부문 1위를 차지했다”면서도 “노조와 노동 운동가들은 쿠팡 직원이나 임시 노동자들이 일자리 보장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어 회사의 노동 관행과 근로 조건에 대해 집단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오는 11일 쿠팡은 미국 뉴욕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있다. 시장이 평가하는 쿠팡의 기업 가치는 50조 원에 달한다. 상장 이후 예상되는 쿠팡 기업가치를 약 500억 달러(56조 7천억 원)로 중국 알리바바 이후 동양권 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쿠팡의 노동 문제에 대해 아직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작업량과 노동강도, 근로자의 부당한 대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한 택배 기사는 “로켓배송이 빠르고 편리하다는 모습 뒤에는 현장에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