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호도 조사에서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1위를 차지했지만 미국이 전례 없이 완강한 거부권(비토)을 행사하면서 최종 결과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게 됐다.
WTO는 28일(현지시간) 전체 회원국을 소집한 회의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한국의 유명희 후보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밝히고 차기 사무총장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반나절 뒤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 성명을 통해 유명희 후보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막판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USTR은 유 후보가 통상협상과 무역정책 입안자로 25년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통상 전문가임을 강조하며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이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을 대비시켰다.
USTR은 “WTO는 중대한 개혁이 매우 필요하다”면서 “현장에서 직접 해본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이끌어야 한다”며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
WTO 사무총장 선출은 컨센서스(의견일치)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1개 회원국이라도 반대하면 안 되며, 미국 등 강대국은 사실상 비토 권한을 행사한다.
이번 선출 과정을 관장하는 데이비드 워커(뉴질랜드 대사)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다음달 9일 일반이사회에 차기 사무총장을 추천할 예정이다. 결과가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미국이 WTO 사무총장 선출에서 이처럼 강하게 거부 입장을 밝힌 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이런 적이 없다. 아예 USTR 홈페이지에 성명문까지 띄워놓고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며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인 만큼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할지에 따라 유동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외신은 오콘조이웨일라 후보가 전체 163개 회원국(투표권 없는 유럽연합은 제외) 가운데 104개국의 지지를 얻어 유 후보를 40표 가까이 앞섰다고 보도했지만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그것은 상대 측 주장이고 우리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40표 정도의 차이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WTO는 회원국 간의 비밀협의 원칙을 내세워 한국 등 당사국에도 정확한 집계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결국 WTO 차기 사무총장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간의 줄다리기로 결판 날 가능성이 농후하며, 특히 미-중 간의 담판 결과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EU는 오콘조이웨일라 후보에게 몰표(27표)를 던졌지만 유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회원국으로 인해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미-중이 합의하면 굳이 더 이상 반대할 이유나 동력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유 후보의 자진사퇴는 없다는 입장이며 남은 기간 동안 미국 등과의 협조 하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