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도 포천에서 미군 장갑차를 추돌한 SUV 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이 SUV 운전자의 과속과 음주운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9시 27분쯤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에서 SUV가 미군 장갑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SUV에 타고 있던 50대 부부 4명이 숨졌다.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 2명 중 운전자인 상병(22)은 경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 SUV 일직선 주행 못 하자 사고 3분 전 운전자 교체
소방 당국은 SUV 탑승자들을 구조해 병원으로 옮기며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운전자와 차주가 일치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알렸다.
SUV의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사고 전 차주인 A 씨가 몰던 SUV가 일직선으로 주행하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자 뒷좌석에 앉은 B 씨가 “운전을 왜 그거밖에 못 하냐”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자 A 씨는 “그럼 형님이 해봐”라고 했다. B 씨는 “그럼 내가 할게”라며 직접 운전대를 잡기 위해 뒤로 돌아가는 장면이 후방 블랙박스에 담겼다.
B 씨는 운전을 시작한 지 3분가량 만에 미군 장갑차를 추돌했다. 사고 직전 영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B 씨가 음주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사고 직전의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하기 위해 데이터 복구를 요청했다.
◇ 제한 속도 60㎞…경찰, 100㎞ 이상 과속 추정
(사진=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두 부부가 숨진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SUV의 앞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미군 장갑차는 오른쪽 무한궤도가 이탈했다.
사고가 난 영로대교의 제한 속도는 60㎞.
경찰은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을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EDR이 없을 때 속도를 추정하는 기법으로 볼 때 100㎞ 이상의 속도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B 씨가 출발 3분가량 만에 100㎞ 이상의 과속을 했다는 것이다. 도로에는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은 SUV 운전자 B 씨가 추돌 직전에 서행하던 장갑차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틀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조수석 쪽으로 추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미군, 호위 차량 규정 위반했지만…사고는 가로등 있는 직선도로
당시 미군 장갑차 2대는 눈에 잘 띄는 조명을 부착한 호위 차량(escort vehicle)을 앞뒤로 동행하도록 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발생 장소는 755m 길이의 직선 다리 끝부분이었다. 당시 현장에 약한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다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등이 설치돼 있었다.
장갑차 뒷부분에는 반사경 2개가 있었다. 후미에 있는 등은 장갑차 특성상 주행 중 불이 들어오진 않는다.
사고가 난 영로대교는 왕복 2차로로, 일대를 잘 아는 주민과 인근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영평사격장)에서 훈련하는 군용 차량들이 주로 이용해 평소 통행량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각도로 조사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자체 1차 조사 결과를 넘겨받는 대로 검토해 미군의 소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2일 오전 국과수에서 B 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을 진행했다”라며 “B 씨의 음주 여부는 확인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