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의 원인 파악을 명목으로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11월 초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정보 목록에 주요 고객 명단과 재고 현황, 증산 계획 등 영업 기밀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반도체 공급망의 위험에 대한 공개 의견 요청 공지’를 통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급사와 주요 수요사를 대상으로 반도체 공급 수요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백악관에서는 전날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인텔, 애플 등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3차 반도체 화상회의가 열렸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당시 “목표는 투명성 제고다. 병목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아내고 문제가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3차 반도체 회의의 후속 조치인 이 설문조사는 45일 뒤인 오는 11월 8일 마감된다. 국내외 반도체 제조사를 비롯해 반도체 설계회사, 주요 소재 및 장비 공급업체, 반도체 중간 및 최종 사용업체 등 반도체와 관련된 사실상 전세계 모든 업체가 설문 대상이다.
설문 조사는 각각 반도체 설계와 제조에 관여하는 공급 관련 업체, 그리고 자동차나 전자회사 같은 반도체 수요 업체를 대상으로 한 13개의 항목으로 별도 구성됐다.
먼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에 영향을 미칠 제조사 대상 설문 내용을 보면 3대 고객 리스트와 예상 매출, 제품별 매출 비중, 리드 타임 등이 포함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과 관련해 수요가 넘칠 경우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 구체적으로 향후 6개월 동안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요구했다.
반도체 수요 업체를 대상으로는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 현황을 자세히 기술하고, 지난 3년 간 반도체를 공급하는 고객사를 변경한 적이 있는지 등을 적도록 했다.
백악관. 연합뉴스미국이 요구한 반도체 관련 기업의 경영 정보는 대부분 영업 기밀에 속한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을 어느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겼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업체마다 다룰 수 있는 반도체 공정이 다르기 때문에 제품의 종류와 경쟁력 등이 드러날 수 있어서다.
반도체 기업의 재고와 생산능력 등이 밝혀지면 보통 협상으로 정해지는 반도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신규 고객 확보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업계에선 기밀 정보가 미국에 기반을 둔 경쟁사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힘입어 인텔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의 핵심 정보가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