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화웨이에 이어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SMIC에 대해 수출 규제를 내림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화웨이 제재’처럼 단계별로 SMIC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나갈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들에게 공문을 보내 중국 SMIC로 수출할 경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SMIC 제품이 중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미국 정부는 중국 화웨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지난 2019년 5월 미국 기업들에 대해 화웨이 수출을 막은데 이어, 2020년 5월에는 해외 기업들에까지 범위를 넓혔다.
더 나아가 지난 8월에는 미국의 기술과 부품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한 제품에 대해서도 화웨이 수출시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업체들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게됐다.
SMIC는 파운드리 전문 중국 최대의 반도체기업으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시장점유율 4.8%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의 TSMC(51.5%), 삼성전자(18.8%),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 대만 UMC에 이은 세계 5위의 기업이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반도체굴기’, 즉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SMIC를 집중 지원해왔다.
SMIC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화웨이처럼 지속 강화될 경우, 파운드리 분야 국내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미국의 제재가 호재가 될 수 있다.
‘잠재적 경쟁자’인 SMIC를 시장에서 도태시킬 수 있어, 자연스레 파운드리 점유율을 높여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당장 SMIC 등을 이용했던 퀄컴이 다른 파운드리를 찾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에 위탁 생산을 맡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저가용 중국 시장을 공략중인 국내 중소형 파운드리 업체도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MIC의 지난 2분기 매출 구성을 보면 지역별로는 중국(홍콩 포함) 비중이 66.1%, 공정별로는 90나노미터 이상 라인 비중이 42.7%에 달한다. 이는 SK하이닉스시스템IC 등의 고객과 상당 부분 겹친다.
한편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7나노미터 공정을 주력으로 하면서 3나노미터 등 ‘초격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삼성전자, TSMC와는 달리 SMIC는 회로선폭 14나노미터 공정을 주력으로 삼고 있어 최첨단 칩 제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SMIC가 세계 5위에 랭크돼 있지만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와는 ‘갭(gap)’이 크다는 말이다.
TSMC와 삼성전자가 치열한 ‘초격차 기술력 경쟁’을 하고 있는만큼 SMIC도 곧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제패를 위해 대규모 장비 투자 및 고객 확보에 나서 1,2위 업체들과 진검승부를 펼치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내수에 의지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주변부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되면 사실상 ‘승부수’조차 꺼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 글로벌 IT 산업의 핵심부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반도체 굴기’ 계획표에 커다란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