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의 이틀째 방한 일정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 북한이 메시지를 내놨다.
북한에서 대미·대남 등 대외문제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의 담화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북한의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4문장짜리 짧은 담화였다.
김여정은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최근 발언을 문제 삼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당 전원회의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하며, 대미관계에서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자, 이에 대해 설리번 보좌관이 “흥미로운 신호”라고 말한 대목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 발언에 이어 “(북한이) 우리에게 후속적으로 어떤 종류의 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는지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은 해당 언론 보도를 전해 들었다면서 “조선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부부장은 이어 “(미국)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여정의 발언은 결국 북미대화와 관련해 미국이 지금 품고 있는 기대는 ‘잘못 가진 기대’로, 해석(해몽)이 틀렸다는 것이다.
김정은 “견인불발 투지로 현 난국 반드시 헤쳐나가겠다” 선서. 연합뉴스북미대화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김정은 발언의 후속조치를 압박하는 미국의 기대에 선을 긋는 셈이다.
다만 김 여정의 담화가 미국의 최근 동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맞지만, 미국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김여정의 의도는 오히려 미국은 지금 공이 북한에 있다고 강조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공은 미국에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에 후속 조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보다 진정성 있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대화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거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면 짧은 담화가 아니라 구구절절 미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내놨을 것”이라며,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흥미’운운하며 가볍게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경고를 하는 것으로 대화 거부는 아니다”고 해석했다.
김여정의 담화가 성김 대표의 방한이 종료되고 이를 평가하는 형식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방한 이틀째, 그것도 청와대 예방 직전의 시점에 나왔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은 성 김 대표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김 대표가 한국방문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에 협의를 거쳐 좀 더 구체적인 조치나 메시지를 내놔야 대화에 나갈 수 있다는 것, 즉 대화에 나갈 명분을 달라는 속내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북한에 대해 ‘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는 선에서 더 나가지는 않고 있다.
성김 미국 대북특별대표. 사진공동취재단성 김 대표는 전날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협의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처럼 미국도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되어 있다며,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미국이 모두 공은 상대에게 있다며 기 싸움을 계속 벌이는 양상이다.
미국이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것은 맞지만, 북한은 현재 경제난 등 내부 문제가 훨씬 급하고, 대미 정책 기조도 ‘선 대북적대시정책 전환, 후 비핵화 협상 재개’의 틀을 견지하고 있어 당분간 북미대화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상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여정의 담화에 비춰볼 때 북한이 북미대화에 곧바로 나설 준비가 아직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대화와 대결 모두를 준비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에 따라 북한도 이제부터 북미대화 준비를 시작하겠지만, 북미 간의 상호불신으로 대화재개 자체도 어렵고 설령 대화가 재개되어도 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를 접견한 자리에서 정부가 구상 중인 코로나 방역과 식량 지원 등 대북 민생협력,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방문, 기후변화 분야 협력 등을 한미 공동 추진 과제로 검토할 것을 성김 대표에게 제의한 바 있다.